나는 더 많은 성취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성취하고 기여하는 삶도 중요하지만, 요즘 내게 부족했던 것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요즘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자주 헷갈린다.
성취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맡은 일은 잘하고 싶고, 복잡한 문제는 정리하고 싶고, 내가 들어간 자리에서는 뭔가가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들보다 앞서고 싶다는 욕망과는 조금 다르다.
나는 누군가를 이기고 싶다기보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그냥 두고 보기 어려운 쪽에 가깝다.
정리되지 않은 문제,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가능성, 방향 없이 소모되는 시간. 그런 걸 보면 자꾸 손을 대고 싶어진다. 어떻게든 구조를 만들고, 설명 가능한 형태로 바꾸고, 실제로 쓰이는 결과로 연결하고 싶다.
내가 성공이라고 불러온 감각
그래서 나에게 성취감은 "내가 남보다 잘했다" 는 느낌보다는 "내가 쓸모 있는 방식으로 있었다" 는 느낌에 가깝다.
내가 만든 문서가 실제로 쓰일 때. 복잡했던 이야기가 한 장으로 정리될 때. 누군가가 내 설명을 듣고 다음 행동을 할 수 있게 될 때. 그럴 때 나는 내가 제대로 살고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아마 오랫동안 나는 그걸 성공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정의가 조금 좁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다른 세 장면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잘 가져오고 마무리할 때 나는 분명히 삶이 가치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여자친구와 맛있는 걸 먹을 때도 비슷한 감각을 느낀다. 날씨 좋은 날 한강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강물을 보고 있을 때도 그렇다.
처음에는 이 셋이 서로 너무 다른 장면이라서 더 헷갈렸다.
- 일을 잘하는 것
-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
-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데, 이상하게 그 안에는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 순간마다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고 느꼈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때는 내가 내 역할을 했다는 느낌이 있다. 내가 있었기 때문에 일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갔다는 느낌.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먹을 때는 삶이 혼자 버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것이라는 느낌이 있다.
한강에 앉아 있을 때는 조금 다르다. 그때는 내가 뭔가를 잘해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서도 아니다. 그냥 강물이 흐르고 있고, 나도 그 앞에 앉아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는 느낌이 있다.
좋은 삶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어쩌면 좋은 삶에는 이 세 가지가 다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기여하는 것.
나누는 것.
머무르는 것.
나는 앞의 두 가지에는 비교적 익숙하다. 일을 통해 기여하는 것, 관계 안에서 마음을 나누는 것. 적어도 그게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세 번째에는 자주 서툴다.
나는 쉬는 시간도 회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데이트도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한 시간이어야 하고, 책을 읽는 것도 성장으로 이어져야 하고, 생각하는 것도 언젠가는 글이나 문서로 정리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이렇게 쓰고 보니 조금 피곤하다.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려고 하면, 삶은 금방 빽빽해진다. 겉으로는 계속 앞으로 가고 있는데, 안쪽에는 이상한 갈증이 남는다. 더 큰 목표가 필요한 것 같고, 더 확실한 성취가 필요한 것 같고, 내가 아직 충분히 도달하지 못한 것만 같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
부족했던 것은 더 큰 성취가 아니었다
내게 부족했던 건 더 큰 성취가 아니라,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 의미를 만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
-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나는 앞으로도 일을 잘하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맡은 일은 가능한 한 제대로 해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사람도 되고 싶다.
다만 이제는 한 가지를 더 기억하고 싶다.
나는 가치 있는 일을 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순간에도, 누군가를 설득하지 않는 순간에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순간에도, 삶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 있다.
잠시 머물러도 괜찮다는 감각
지금 나에게 필요한 성공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일 수 있다.
날씨 좋은 날 한강에 나가 앉는 것.
흐르는 강물을 보는 것.
그 시간을 설명하거나 기록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
그냥 잠시, 삶이 흘러가도록 두는 것.
나는 더 많은 성취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잠시 머물러도 괜찮다는 감각이 필요했다.